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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개인전 [신사점] 2010 .07 .01 - 2010 .0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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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여백 속에 남겨진 아득함

 이 건 수 / 미술이론'월간미술 편집장

 김혜진은 박꽃 그리는 화가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박꽃이란 생물학 도감의 대상으로서의 꽃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정신적 표상이자 삶의 체험을 상징화한 관념적 대상으로서의 꽃이다.
 주관이 세계와 접촉한 후, 비로소 자신의 머리에 떠오른 세계에 대한 인식이란 언제나 관념적이며 추상적인 것이다. 때문에 그것은 단 하나의 언어로 고정될 수 없는 열린 개념의 인식이며, 계속 생성하면서 다양한 언어로 해석될 수 있는 살아있는 세계의 인식이다.
 이 때 살아있는 세계라는 것은 박꽃이라는 대상을 통해서 작가 자신에게 열려진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쓰고 있는 인간의 논리적 사고로 규정지어질 수 없는 세계이기도 하다. 그것은 불립문자(不立文字) ‧  염화미소(拈華微笑)의 세계인 것이다. 때문에 꽃이라는 구태의연해 보이는 소재와 수묵이라는 정직한 재료를 지닌 그의 그림을 한마디로 설명하려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재미없는 동어반복이 될 것이다.

 이렇듯 그림을 언어와의 관계에서 비교해볼 때, 김혜진의 작품에선 일반적인 잣대와 시각적 관습의 획일성으로써는 가늠할 수 없는 애틋한 그 무언가가 엿보인다. 다 칠하고 남은 작고 흰 공간 속으로 모든 것들이 귀속하려고 하는 구심력의 화면, 다시 말해 그리지 않은 것, 표현하지 않은 것, 말로써 말하지 않은, 공간으로 집약하려는, 그래서 나의 세계는 말로써 묶을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의 혼재임을 드러내려는 작가의 조형의지가 무의식적으로 내재해 있다.
 
 사실 김혜진이 쓰고 있는 재료나 방법론은 너무나 오래된 것들이다. 이 점은 단점이 될 수도 있고,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림이라는 것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가 자신의 감정을 색이나 형태를 빌어 표현하고 그것을 통해 관객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데에 있다고 할 때, 커뮤니케이션의 통로를 차단하고 자기의 감정을 숨기기에 급급해 하는 무감동주의의 그림이 가득 차 있는 지금의 미술시대에서 오히려 따뜻한 감정의 울림을 추구하고 있는 그의 그림은 적지 않은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살아있는 작품 속엔 새로움이 들어 있다는 말을 한다. 그것은 영원하면서도 찰나적인 새로움이다. 그 새로움을 위해서 작가는 끝없이 변해야 한다. 그러나 매체 쪽으로 기우는 변화가 아니라 매체가 작가 쪽으로 달라붙는 변화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새로운 매체가 발명되었다고 그 매체에 급급히 따라가다 보면 작가는 없어지고 매체만 남게 된다. 그러나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항상 새롭게 하고, 어떤 매체든지 선택해 살짝 비틀었을 때 그 속에 새로움이 담겨지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 생명력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가장 전통적인 재료를 갖고 가장 새로운 감각을 유지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면서도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은 재료의 새로움과 오래됨이 문제가 아니라 작가가 얼마만큼 자신의 진실을 새롭게 풀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김혜진의 화면 속에선 언뜻언뜻 그런 진실성의 맥락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의 몇몇 작품 속에선 종이와 색채를 통해 녹아 있는 그의 진실이, 그의 눈물이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순정파의 그림이요, 끝나지 않은 서정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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